"대통령 특별사면권, 남용 우려 크다"

2015-08-26 10:22:28 게재

특사, 일반사면 10배 이상 … 입법조사처 "견제·기준 전무"

미국, 선고 5년 지나야 '신청' … 범죄피해자 의견도 들어

우리나라의 특별사면 제도가 아무런 기준과 견제장치가 없어 남용될 우려가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민대통합'을 명분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유명정치인, 공직자, 경제인 등이 대거 포함돼 일반 국민이 납득키 어려운 사례도 적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기준도 견제도 없는 특별사면 = ?특별사면이란 죄를 범해 형 선고를 받은 사람 중 일부를 특정해 형집행을 면제하거나 형 선고의 효력을 상실케 하는 대통령의 특권이다.

25일 국회 입법조사처의 '특별사면권의 남용 문제와 개선방안' 현안보고서에 따르면 그간 우리나라에서 행해진 일반사면은 9차례인 데 반해 특별사면은 10배가 넘는 95차례 실시됐다.

일반사면은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반면 특별사면은 외부 견제 없이 행정부 내부 절차만으로 가능하다 보니 그만큼 손쉽게 행해졌다는 뜻이다.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은 헌법, 사면법, 사면법시행규칙에 근거하고 있다. 이들 법령은 특사가 △검사 또는 교정시설 장의 제청 △검찰총장의 상신 신청 △사면심사위원회 심사 후 법무부장관 상신 △국무회의 심의 등의 절차를 거쳐 결정되면 형의 집행이 면제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특사 대상, 기준, 한계 등에 관한 실제적 요건과 제한에 관한 내용은 전무하다. 어떤 범죄에 대해 얼마나 기간이 경과해야 사면대상이 되는지 정해진 바 없으며 대내외적으로 견제장치도 없다.

그러다보니 살인·성범죄를 저지른 자도, 부패범죄·특정경제범죄를 저지른 자도 특별사면 대상이 된다. '판결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특사를 받아 석방되거나 특사 대상이 되기 위해 상소를 포기하고 형을 확정받는 일도 있다.

이같은 문제가 제기되자 2007년에 사면법 개정으로 사면심사위원회를 법무부장관 산하에 설치했지만 구성이 법무부 중심이라 사실상 모든 결정을 대통령이 임의로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변한 게 없다는 지적이다.

특별사면된 최태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4일 경기 의정부교도소 앞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최 회장은 이날 광복 70주년을 맞아 형집행 면제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을 받았다. 의정부=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본, 죄 별로 신청기간 정해둬 = 이같은 우리나라의 특별사면 제도는 각종 법률과 규칙으로 대상, 기준을 상세히 정한 해외 선진국들과 대비된다.

미국은 사면권이 이원화돼 있다. 대통령은 연방 범죄에 대해서만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고 주 단위 범죄에 대한 사면은 주지사 등의 몫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은 연방규칙이다. 이 규칙에 따르면 대통령의 사면은 연방법률 위반으로 유죄선고를 받은 날로부터 최소 5년이 지난 사람의 청원이 먼저 있어야 가능하다. 청원서가 수리되면 사면국은 해당 사건 담당 연방검사와 판사의 의견을 들어 심사를 진행토록 하고 있다.

무엇보다 사면 청원자에게 피해를 입은 범죄피해자에게 이 사실을 통보해 피해자로부터 의견을 제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수사 및 사법기관, 피해자의 참여를 규정해 대통령의 독단적 사면권 행사를 견제하고 있는 셈이다.

독일은 일반사면권은 국회가, 특별사면권은 대통령이 각각 갖고 있다. 미국처럼 대통령의 권한은 연방사건에 국한되며 그 외의 사건에 관한 것은 개별 주·시의 권한이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의 특사에 해당하는 '개별은사'의 기준이 관련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어 자의적 사면 가능성이 적다.

미국·독일과 마찬가지로 당사자의 '신청'이 먼저 있어야 하는데 △구류나 과료는 6개월 △벌금은 1년 △유기징역 또는 금고는 형기의 3분의 1 △징역 또는 금고는 10년이 각각 경과한 후에야 신청이 가능하다. 사면심사위원회 역할을 하는 중앙갱생보호심사회는 정치적 중립을 위해 3명 이상 동일 정당에 속한 자로 임명될 수 없게 하고 있다.

보고서는 특사가 자의적으로 운영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상범죄 및 대상자, 형기 등을 구체적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사면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사면심사위원회가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회나 대법원 등 외부기관의 의견이 반영되는 인적구성이 필요하며 위원회 회의록 및 심의서도 즉시 공개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입법조사처는 "특별사면권은 전통적 법 제도 속에서 명맥을 이어왔으나 정치적 남용 또는 자의적 권한 행사 가능성이 늘 위험인자로 작용해왔으며 법치주의에 대한 불신을 가져오는 요소가 되기도 하고 있다"며 "사면법 개정을 통한 권한의 제한 및 견제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현재 국회에는 △사면심의위원회 위원을 대통령, 국회, 대법원이 각각 3명씩 지명하는 방안 △사면심사위원회 회의록을 특별사면 실시 후 즉시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 등의 사면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돼 있는 상태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이재걸 기자 기사 더보기